[번역] 파리 기후 협정의 의미

This article was translated into Korean by Hoon Yun, under the permission of original author David Roberts (david.roberts@vox.com). Original article available at http://www.vox.com/2015/12/15/10172238/paris-climate-treaty-conceptual-breakthrough.

파리 기후협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 부통령 조셉 바이든이 빈정거린 것처럼 ‘퍽이나 호들갑 떨 일’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이를 해결했다기보다는 국가들의 접근법을 수정하게 만든 일종의 ‘개념상의 돌파구(conceptual breakthrough)’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협정을 세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나마도 돌파구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기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보며 파리협정과 기후변화에 대해 고찰해 보도록 하자.

 

국제 기후협약의 2대 필요 조건—그러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함정

기후변화 현상이 발견된 것은 (또는, 기후변화가 위협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반박하기 어려워졌을 때) 1980년대 말이었다. 위기감과 사명감에 불타는 일부 과학자들과 환경론자들은 기후변화 현상을 인정하고 대응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UN 차원에서 국제 협약을 마련하여 회원국들이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오존층에 관란 몬트리올 협약의 성공 사례가 있었기에 유사한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지구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모든 국가가 대대적으로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전지구적 문제이니만큼 전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 조약 형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강해졌다.

형평성 있고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항이 필수적인데, 첫째는 의무와 비용의 대부분은 이제까지 탄소배출량이 많은 선진국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들 각 선진국에 대해 과학적으로 도출한 국가별 감축량을 법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합당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 조약을 체결하는 데에는 매해 실패하곤 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나마 전성기였던 것은 1997년에 조인되고 2005년 발효한 교토의정서 시절이다. 교토의정서 상의 목표치는 한심할 만큼 불충분했지만, 전세계 국가들이 참여하였고 적어도 선진국들에게는 법적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95대 0으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저지하였고, 2001년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 참여를 취소했다. 캐나다와 호주를 비롯하여 조인한 다른 국가들 역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나 마땅한 제재 조치 없이 지나갔다. 교토의정서상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 중국의 경우 거리낌없이 석탄 발전에 힘입어 경제 발전을 이룸으로써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고의 배출국이 되었다. 결국 교토의정서는 세계 탄소배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변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UNFCCC는 교토의정서의 기본 골격을 여전히 유지하려 했다. 즉, 감축 목표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어야 하되 선진국들만 이를 채택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법적 효력이 있는 감축 목표 채택을 거부했며,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타 국가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코펜하겐 회의가 열렸고, 하늘을 찌르는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형편없었다. 그나마 막판에 오바마 대통령이 노력한 덕에 아주 약간의 성과가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코펜하겐 기후 회의는 여러모로 대실패라고 간주된다. 흔히 마약중독자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UNFCCC는 ‘바닥을 쳤다’. 그러나 중독자들의 이야기에서처럼 그 후 전환점을 마련했고, 결국엔 UNFCCC 일부 회원국들은 처음에 구상했던 기본 골격이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국제 기후 협약에 포함 가능한 것과 아닌 것

첫째, 선진국과 개도국을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어떤 국가는 경제 개발을 많이 이루었고 어떤 국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며, 그리스처럼 거꾸로 가고 있는 나라도 있다. 중국은 아직 일인당 소득이나 일인당 배출량이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지만, 총 배출량은 1위이며 누적 배출량 순위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이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을 제외하는 형태로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따라서, 조약에 어떤 형태로든 이들 국가의 참여를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로, UNFCCC 이상론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이 뭐라고 하든 현실적으로 권력은 국가가 쥐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것은 국가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국제적 분위기나 조약조차도 국내 정책 없이는 무력하다.

국가는 자국 이익에 맞는 한도 내에서만 행동한다. UN 조약이 ‘법적 효력’이 있다한들 국가가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UNFCCC는 회원국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권력을 가지며, 아직 필요한 만큼의 권력은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기후조약에서 가능한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냉정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UNFCCC가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는 한, 각국의 자발적 정책이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UN 체제 내에서 체결된 조약이 국내 정책 수립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기후 협약의 잠재성과 파리 협정의 의미

국제 기후 협약은 투명성 제고 및 도덕적 권고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후 협약 하에서는 각국의 자발적 감축 목표를 공통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할 수 있으며 동일한 측정 방법으로 비교할 수 있다. 각국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감축 목표 달성에 있어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또한, 협약 하에서 개도국 지원, 2050년까지 제로 배출량 달성, 기온 2도 이하 유지 등 공통의 원칙과 목적을 명시할 수 있다. 각 회원국들의 구체적인 정책 목표 달성 여부를 기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정책 검토 및 수정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감축 성과는 개도국 및 저지대 국가 지원에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파리 협약의 기본 골격이다.

궁극적으로 UNFCCC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 자국의 위치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국가간 압력 뿐이다. 국가가 의무에 구속되지 않을 때, 그렇지만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때 배출량을 감축할 것이라는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사회학에서 밝혀낸 바와 같이, 목표를 공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달성 방법이며 이는 국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년간 드러난 바와 같이, 국가간 압력 역시 꽤나 효과적이다. 중국과 미국이 양자간 협약을 체결한 뒤, 다른 국가들은 변명거리가 사라져 버렸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각기 감축 목표를 설정하여 파리에 모인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파리 협약은 기존의 기후 협상에 비하여 상당히 매끄럽게 진행된 편으로, 별다른 이탈자나 불협화음 없이 융통성 있게 마무리 되었다. 논의를 질질 끄는 것으로 유명했던 인도는 협상 진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태양광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캐나다도 난데없이 1.5도 목표를 지지하고 나섰다. 심지어 악명높은 베네수엘라마저 국가 배출목표를 제출했다. 실로 오랜만에 나온 만장일치의 결과물이며, 향후 수십년간 버틸 수 있는 효과적인 협약이 탄생한 것이다. 드디어 힘겨운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상황이다. 미국 유명 싱크탱크 CFR의 수석 연구원 마이클 레비의 표현처럼, 낙관주의야 말로 파리 회의의 가장 큰 성과물일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회원국들의 몫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들이다. 그런 면에서 파리 협약이 성공적일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UNFCCC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국가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라진다. 이번에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기후 협약을 체결한 것은 협상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에너지에 대한 경제적 관점이나 대중의 시선이 변화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기후변화 운동에도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기후 협약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EU 내부적으로 정치 경제적 균열이 일어나거나 인도의 대규모 태양광 사업이 실패할 경우, 또 중국의 정치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지도층의 정책 지원이 약화되는 경우 국가들의 단결은 지연되거나 중지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는 미국 공화당 내의 기후변화 부인론자들이 집권할 경우다. UN 협약은 이러한 사안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파리 협약은 이미 자리잡고 있는 국가간 협력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공통의 목표를 천명하고, 시장 분위기를 조성하며, 진행 상황을 기록함으로써 긍정적 피드백을 보내는 것이 파리 협약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능이다. 또한 현재로서는 부족한 개도국 지원의 의무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의 에너지 판도 변화를 수립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 국제 협약은 국내 정책 상황을 반영할 뿐,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각국이 탄소 감축에 박차를 가할 때 비로소 국제 협약의 힘도 강화될 것이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UN이 가진 권력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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